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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집회’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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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집회·시위에 대한 대응이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야간 문화제 형태로 진행된 일부 행사가 사실상 집회로 변질됐다며 미신고 집회로 간주하고 강제 해산에 나서면서다. 그렇다면 ‘집회’란 무엇일까.

집회와 시위에 대해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약칭 집시법)’이 규정하고 있다. 경찰청 정보관리과가 해당 법률의 소관 부서다.
그런데 ‘집회’를 법률 제목의 첫머리에 세웠지만, 놀랍게도 집시법에는 ‘집회’에 대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집회’와 짝을 이뤄 많이 쓰이는 ‘시위’에 대한 정의는 있다. ‘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 광장, 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집시법 3조는 집회와 시위를 뭉뚱그려 주최자에 대한 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 집회와 시위에 차이가 크지 않다는 입법 취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대법원은 시위에 대한 법률상 정의에 착안해 집회를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인이 공동의 의견을 형성하여 이를 대외적으로 표명할 목적 아래 일시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모이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1인이 아닌 다수’, ‘공동의 의견 형성’, ‘대외적 표명’이 키워드다.
 

집회·시위와 문화제·기자회견의 모호한 경계

집시법

일반 시민들은 집회 또는 시위를 정치적 목적을 위한 행사로 쉽게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정치적 목적’이 있어야만 집시법이 규정하는 집회(또는 시위)로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 집시법 15조는 ‘학문, 예술, 체육, 종교, 의식, 친목, 오락, 관혼상제 및 국경행사’에 관해서도 ‘집회’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문화제 또는 기자회견 등으로 통칭할 수 있는 개념들이다.

집단적 사익을 위한 집회 또는 시위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비춰 정치적(물론 ‘정치적이라는 말 자체가 정치적이다) 행사만 ‘집회’일 리는 없다. 다만, 문화제나 기자회견 등은 사전 신고 등 집시법이 부과하는 여러 의무 사항들이 면제될 뿐이다. 그렇다면 집시법이 규제하는 ‘집회’는 사전 신고 등 집시법상 의무가 부과되는 집회 또는 시위로 거칠게 규정할 수 있다. 이하에서 ‘집회 또는 시위’는 집시법상 의무가 부과되는 집회 또는 시위, 문화제나 기자회견은 집시법상 사전신고 등의 의무가 면제되는 개념이라고 이해하자.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문화제 또는 기자회견과 집회·시위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경찰의 집회 대응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질문이다.

 

“‘판례’가 기준인가”…과녁을 빗나간 비판

집시법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 기준에 부재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법률에 각기 다양한 양태를 띨 수 있는 집회에 대해 구체적 기준을 모두 열거하기는 불가능할 수 있다. 개별 사안에 대한 법원 판결, 즉 판례에 따라서 기준을 세울 수밖에 없다. 한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법조계에 광범위하게 동원됐지만, 형법에 이 죄목 적용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없다. 기존 판례를 검토해 기소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했고, 검찰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때문에 최근 일각에서 제기된 ‘판례에 따라 문화제 여부를 판단하느냐’는 비판은 과녁은 비켜간 것이다. 경찰 입장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에 왜 문제제기를 하느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다. 과녁에 좀 더 정확하게 겨누려면 질문을 ‘판례를 바탕으로 한 구체적 기준이 존재하느냐’로 바꿀 필요가 있다. 물론, 이 질문 역시 실현 가능성과 함께 논쟁의 지점이 있는데, 이 부분은 뒤에서 살펴보자.

그럼 판례에 따라서 무엇을 ‘집회’로 봐야 하고, 무엇을 문화제나 기자회견으로 봐야 할까. 판례는 ‘이것이 집회다’라고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판례는 구체적 사례에 대해 ‘집회가 아닌 것은 아니다’, 즉 ‘어떤 경우는 문화제나 기자회견이 아니다’는 식의 판단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는 ‘집회’는 집시법상 사전 신고 의무 등이 부과된 집시법상 집회임을 다시 한번 주지할 필요가 있다)

 

‘문화제·기자회견’ 제목으로 진행된 행사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대법원은 2013년 3월, 10여 명이 서울 명동에서 플래시몹 형태로 진행된 문화제를 신고 의무 등이 있는 ‘집회’로 판단했다. (2011도2393) ‘청년 실업’과 관련한 문화제였는데,
참가자 중에 청년 실업 해결을 촉구하는 피켓을 손에 들거나 목에 건 사람이 있었고, 특정인이 구호를 외치는 방법으로 모임(문화제)을 진행했다는 점이 주된 이유였다. 문화제 장소가 불특정 다수 시민이 지나는 명동 한복판에서 진행됐다는 점도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됐다.

대법원은 2011년 12월에는 20여 명이 기자회견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행사를 사전 신고 등이 필요한 집회라고 판단했다. (2010도15797) 재판 대상이 된 행사는 2008년 3월 미군종합훈련장 앞에서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규탄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이었는데, 규탄 내용을 담은 현수막과 피켓 등이 사용됐고,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구호가 외쳐졌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법원은 또 2020년 5월, 정당 당사 앞에서 진행된 퍼포먼스가 포함된 기자회견 역시 사전 신고가 필요한 집회라고 판단했다. (2019도16885) 2016년 12월, 당시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추진을 비판했던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를 비판하는 취지의 기자회견이 판단 대상이었다. 당시 기자회견에는 탄핵안이 통과되면 ‘손을 장에 지지겠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이 대표를 풍자하는 내용의 퍼포먼스도 포함됐다.

대법원은 해당 기자회견이 불특정 다수에게 개방된 노상에서 약 45분 동안 진행됐고, 기자회견 동안 피켓 사용과 사퇴 촉구 취지 구호가 ‘지속적’으로 제창됐다는 등의 이유로 해당 기자회견은 사전 신고 등이 필요한 집회로 판단했다.
 

얼마나 ‘지속적’이어야 ‘집회’가 되는 건가

이런 일련의 대법원 판례에 따라 경찰은 문화제 또는 기자회견과 집회를 가르는 기준으로 ‘피켓 사용 여부’, ‘구호 제창 여부’ 등을 들고 있다. 때문에 일부 기자회견에서는 경찰이 집회라고 판단한 빌미를 제거하고 위해 구호 제창 순서를 생략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이 드는 기준을 수용하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구호 제창은 한 번만 이뤄져도 기자회견이 아닌 집회는 되는 걸까. 앞서 살펴본 2019도16885 판결에선 구호가 ‘지속적’으로 제창됐다는 이유로 기자회견이 아닌 집회로 판단했는데,
지속적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자주 이뤄져야 ‘지속적’으로 판단되는 걸까. 사회자 한 명이 혼자서 지속적으로 크게 구호를 외치면 기자회견이고, 참석자 다수가 함께 한두 번의 구호를 제창하면 기자회견이 아닌 집회가 되는 건가.

이런 모호함 때문에 구체적 기준 마련 필요성이 제기된다. 구체적 기준이 없다면 현장에 따라 자의적으로 법 집행이 이뤄질 수 있고, 그 결과 현장에 따라 법의 잣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 외형상 비슷해 보이는 문화제를 두고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어떤 행사는 집회, 또 다른 행사는 문화제로 인정된다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양상을 보일 수 있는 집회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과 구체적 기준이 마련되면 악용 가능성이 있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구체적 기준 마련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악용 가능성 우려”

한 정부 관계자는 구체적 기준 마련 필요성에 대해
“현장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구체적 원칙과 기준만 강조할 경우 현장에서 오히려 과잉 대응이 나올 수 있다”며,
“큰 기준과 원칙만 제시하고 현장 지휘관에 판단에 맡기는 게 맞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구체적 기준이 마련돼 외부로 알려진다면 해당 기준을 악용하는 역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예를 들어 행사 시간의 10분의 1 이상 구호가 제창되면 문화제가 아닌 집회로 판단한다는 구체적 기준을 세울 때, 집회 주최자나 참가자들은 10분 1에 살짝 못 미치는 형태로 구호를 제창하며 기준을 빗겨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논리적으로 가능할 일이지만, 집회·시위 주최자 및 참가자들에 대한 해당 정부 관계자, 나아가 현 정부의 시간이 많이 반영된 의견으로 읽힌다.

구체적 기준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은 어떠할까. 대법원은 다수의 판결에서 문화제나 기자회견이 아닌 사전 신고 의무가 있는 집회인지 여부에 대해
“집회의 주된 목적, 일시, 장소, 방법, 참여 인원, 참여자의 행위 태양, 진행 내용 및 소요 시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적고 있다. 행사의 양태는 다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인데, 행사 때마다 문화제나 기자회견인지 아닌지에 대해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음을 잉태한 문장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다른 차원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대법원의 이런 판단은 경찰이 문화제와 집회를 가르는 기준으로 들고 있는 ‘피켓 사용’과 ‘구호 제창’ 등이 판단의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켓 사용’, ‘구호 제창’ 등의 기준은 얼마나 현실적합성이 있나

피켓

‘구체적 기준’ 논의와 별개로 ‘피켓 사용’과 ‘구호 제창’이라는 경찰의 기준은 얼마나 현실 적합성이 있을까. 갈수록 문화제와 집회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 형태로 진행되는 행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피켓 사용이나 구호 제창은 없이 가수들의 공연만 이어지는 행사다. 그런데 연주되는 노래들은 모두 정치적 메시지가 강하게 담긴 자작곡들로, 행사 참가자들이 해당 가수의 노래에 큰 박수로 호응한다면 그 공연은 문화제일까, 집시법상 사전 신고가 필요한 집회일까.

집회로 신고 된 행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해당 집회에서 피켓 사용이나 구호 제창은 없다.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자작곡도 연주되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대중가요들을 합창할 뿐이다. 그런데 참가자들이 합창하는 대중가요에 참가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정치적 메시지를 투영한 상태라고 해 보자. 국정 농단 초기 국면에서 이화여대 학생들이 대중가요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불렀던 것이 예가 될 수 있겠다. 이런 행사는 문화제에 가까울까, 집회에 가까울까. 굳이 꼭 사전 신고가 필요한 경우일까. 시대의 변화에 기준 논의가 필요하다.

 

‘미신고 집회는 해산’…논리를 점프한 경찰

시대의 변화에도 ‘현재’ 경찰의 판단 기준은 ‘피켓 사용’ 및 ‘구호 제창’ 등이다. 이 기준을 근거로 경찰은
“야간문화제 등을 빙자한 불법 집회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해산 조치하겠다'(윤희근 경찰청장, 5월 18일 긴급 기자회견) 엄포를 놓고 있다. 구호 제창 등이 이뤄졌으면 문화제가 아닌 집회이고, 집회라면 사전 신고를 했어야 하는데 안 했으니 불법이며, 불법이니 해산 조치하겠다는 논리다.

하지만, 여러 언론 보도로 지적된 것과 같이 ‘미신고 집회=해산 대상’은 아니라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2012년 4월, 미신고 집회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에 한해 해산을 명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10도 6388 전원합의체)
‘미신고라는 사유만으로 그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산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이는 사실상 집회의 사전신고제를 허가제처럼 운용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게 되므로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판결은 집회 미신고 여부에 대해서는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옥외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취지다. 또 다른 대법원 판결(2009도 13846)은 경찰이 사전 금지 또는 제한된 집회에 대해서도 타인의 법익 침해나 기타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하여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은 경우에는 이에 대하여 사전 금지 또는 제한을 위반하여 집회를 한 점을 들어 처벌하는 것 이외에 더 나아가 이에 대한 해산을 명하고 이에 불응하였다 하여 처벌할 수는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단은 미신고 집회가 이뤄지고 있다면, 사전 신고 의무 불이행에 따른 책임만 물으면 되고 미신고 집회라고 해서 바로 해산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집시법의 사전 신고 의무는 집회 주최 및 참가자들의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집회에 참가하지 않는 다른 시민의 이익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사전 신고는 경찰이 일반 시민의 이익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경찰에게 집회의 개최 가능 여부에 판단 권한을 주기 위해 마련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때문에 대법원은 미신고 집회일 경우 기본적으로 집회의 진행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에 한해 해산을 명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물론 ‘직접적 위험’, ‘명백하게’, ‘초래된’ 등 개념은 또 다른 논쟁 지점이다)
경찰은 문화제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을 판례에 기대고 있지만, ‘불법 집회(미신고 집회)는 해산하겠다’고 논리를 점프하며 판례에 반한 자가당착적인 의사 결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권 기조 달성에 적극 부응하며 위기를 돌파하려는 경찰

이제 복잡한 법리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나 보자. 현재 경찰의 대응이 논란이 되고 있는 건 일관성 때문이다. 오랜 기간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문화제를 진행해 왔는데, 갑자기 경찰의 대응 기조가 최근 돌변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경찰은 지난해 이태원 참사로 궁지에 몰렸다. 그러다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 대응을 기점으로 궁지에서 벗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반등의 분기점이 된 화물연대 파업 대응에 앞장서면서, 현 정권 기간 내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이태원 참사라는 비극적 사고 야기 책임의 굴레에서 경찰은 다소나마 벗어난 것이다.

이후 경찰은 역시 대통령이 강조한 ‘건설현장 폭력행위 엄단’과 관련해 ‘200일’을 특별단속 기간으로 내걸고 정권 기조 달성의 선봉에 섰다. 이번 집회·시위에 대한 엄정 대응 방침도 정부·여당의 강경 대응 기조가 없었다면 이유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정권 기조에 적극 부응하면서 경찰은 위기를 돌파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경찰 내부에서 이런 위기 돌파를 마냥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경찰 내부에선 “최근 경찰의 기조는 경찰 조직 전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윤희근 경찰청장 개인을 위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집회 현장 경찰

특히, 최근 집회·시위 대응과 관련해서는 “집회·시위 대응의 최일선에 있는 경비 기능에 조직 내 힘이 많이 실리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자칫 현장에서 오버를 할 경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이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집회에 대한 강경 대응 기조 속에 2005년 농민 2명의 사망, 2015년 고 백남기 농민 사망과 같은 비극적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지, 그 결과 경찰이 다시 궁지에 몰릴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지휘부가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내용이다.

 

‘집회·시위’의 궁극적 상대방은 ‘일반 시민’이 아닌가

집회를 주최하는 측에 대한 비판 내지 성찰 필요성에 대한 의견도 나온다. 앞서 살펴본 집회에 대한 법적 정의와 별개로 일반 시민들은 집회에 대한 암묵적이지만 공유된 정의를 가지고 있다. 거칠지만 ‘집단의 요구 사항 관철을 위한 다수의 모임’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의에 따를 때, 집회의 1차적 상대방은 요구 사항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정부 내지 기업 등의 단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집회를 주최하고,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상대적 약자라고 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 요구 사항을 관철할 수 있었다면, 집회라는 수단을 이용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집회는 기본적으로 주최자 및 참석자 입장에선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실적 제약에도 집회가 주최 측, 나아가 참가자들의 목적을 달성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건, 집회의 2차적 상대방, 나아가 궁극적 상대방은 일반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집회라는 집단행동을 통해 일반 시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일반 시민들의 집회 주최 및 참가자들에 대한 지지, 궁극적으로는 메시지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낸다면 다윗은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 정부나 기업들 입장에서 여론 보다 무서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회는 본질적으로 일반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하는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집회 방식과 함께 메시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일반 시민들의 불편, 나아가 혐오를 최소화하면서 ‘정책대안’ 등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메시지 개발에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일련의 집회는 이런 필요성을 충족했을까.

최근 경찰의 집회에 대한 강경 대응 기조로의 선회는 ‘노숙 집회’에 계기가 됐다. 출근길 특히 등굣길에서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한 게 직접적 계기였다. 집회를 주최한 노조 측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오랫동안 진행돼 왔던 형식을 이어갔을 뿐인데, 갑자기 돌변한 경찰의 대응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시대는 변하고 있고, 집회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감정도 변하고 있다. 집회의 궁극적 목적이 일반 시민들의 지지를 획득함으로써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것이라고 할 때, 전통적인 형태의 노숙 집회는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을까. 특히 ‘현재’ 시민들의 ‘감수성’에 비추어 봤을 때 말이다. 집회를 주최한 노측이 경찰의 강경 대응에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아닐까. 메시지의 정교화와 함께 집회 방식의 변화도 필요한 건 아닌지, 집회 주최자 및 참가자들의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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